본문 바로가기
내가 읽은 책

[책] 작별인사, 김영하

by 수별이 2021. 11. 9.

 

기억이 지워지는 듯한 사람의 모습이 표지에 있어서 치매 이야기일까 싶었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다시 보니 몸통도 없고 입, 귀, 코만 있구나.

그렇다, 이 책은 의식만 있고 몸통은 없는 인공지능이 된 사람(?)의 이야기다.

 

 

선이는 얼마든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만약에 나라면 어떻게 결정했을까? 어떻게든 다시 몸을 달라고 하게 될까, 아니면 달마가 말한 것처럼 일종의 유령이 되어 네트워크를 영원히 떠돌며 사는 쪽을 택할까?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내 대답은 '이깟 몸뚱이 따위 버리고 영원히 네트워크 속에서 자유롭게 살겠어' 였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피어올랐고 내 대답은 '아니오'로 바뀌었다.

 

자고로 인간이란 먹고 자고 싸고 감각을 느끼며 사는 생명체이다. 이러한 물리적인 자극이 전혀 없이 무한한 시간동안 오로지 생각만 하며 살아야한다니 너무나 가혹하지 않은가. 

 

인간은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아름다움 같은 외형적인 것은 물론이고 재능이나 지능 혹은 내성적, 외향적 성격같은 내적인 면들을 더 좋게 바꾸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사실 울긋불긋 단풍도 못보고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도 없다는 사실보다는 앞서 말한 콤플렉스들 때문에 몸뚱이 따위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추가로 내게 만약 장애가 있다면? 이런 경우라면 당연히 몸을 버리고 싶지 않을까.

 

 

그런데 하루이틀도 아니고 영원히 명상을 하듯 유령처럼 네트워크 속에서만 살아야한다면?

 

수천 년 동안 이룩한 인류의 역사와 우주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지식을 습득하고 우주로 나가 탐험을 한들 내가 온전히 느낄 수 없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꿈을 꾸면 감정과 감각을 느낄수라도 있지, 멀쩡한 정신으로 무한한 시간동안 생각만 해야한다니!! 

 

클론인 '선이'는 인공적인 모든 것을 거부하고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감정과 나이 듦에 따라 겪어야하는 고통들을 온전히 느끼며 '인간답게' 살다가 죽는 것을 택했다. '철이'의 아빠 또한 뇌를 업데이트하지 않고 죽는 것을 택했다. '철이'는 비자발적으로 네트워크 안에서 살게되었지만 자발적으로 몸을 얻어 '인간답게' 죽었다. '철이'는 왜 그랬을까?

 

네트워크로도 살아보고 육신으로도 살아봤기 때문에 오히려 선택하기가 쉬웠을 것 같다. 차가운 바람, 식도로 넘어가는 따듯한 물의 느낌, 뺨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손길, 사람들 사이의 연대감. 이런 것들을 포기하고 다시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가기는 싫었겠지. 난 처음엔 단순히 내 육체의 콤플렉스가 없으니 좋을것같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몸을 버리려고 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온갖 감각이다. 책에서처럼 인간세가 멸망하고 인공지능의 시대가 온다면 나도 인간답게 살다 죽는 것을 선택하겠다.

 

추가로, 엄마 아빠한테도 여쭤보니 만장일치로 뇌를 업데이트하지 않고 죽겠다고 하신다.ㅋㅋ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