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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책] 스노우볼 아가씨, 류희묵

by 수별이 2021. 11. 7.

 

 

묵아, 그러는 너는 뭐 사랑이고 우정이고 다 영원할 것 같고 제대로 하고 있는 줄 알아? 내가 막 험한 소리 해도 너는 나한테 암말 못하지? 그리고  속으로는 내 욕하지? 말 안해도 다 들려. 니 표정이 다 말하고 있어. 그건 뭐 제대로 된 관곈줄 아니? 깨질까 봐 아무 말도 못하고, 그렇게 진심 없이 영원한 게 좋아? 영원한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내 눈엔 그런 거 엄청 외로워보여. 너 보고 있으면, 꼭 그 뭐냐, 그 흔들면 막 번쩍번쩍하는 거. 그래, 스노우볼. 그 스노우볼 안에 혼자 사는 공주님같아. 거기에다 애인 하나 친구 하나 딱 모셔놓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혼자 좋다고. 제발 거기서 깨고 나와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좀 봐봐.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주인공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낸 소설.

흡입력이 좋아 순식간에 다 읽었다.

독립출판으로 나왔다가 반응이 좋아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다고 한다.

 

 

위 인용문은 친구 유진이 묵에게 쏟아내는 말이다.

작정을하고 묵을 공격하는데 묵은 받아치거나 변명도 하지 않고 그저 듣고만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고 

말을 해놓고도 혹시 상대방의 기분이 나쁘면 어쩌지 하고 전전긍긍한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스타일이다.

나도 혹시 내 스노우볼이 깨질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평화로움, 잔잔함, 일상, 평범 이런 가치들이

날아오는 작은 돌멩이에 맞아 금이가고 깨질까봐, 내 소중한 스노우볼이 부서질까봐.

 

부서지면 좀 어떤가. 수선을 하든가, 여의치 않으면 새로 사면 되지.

 

 

사실 처음에는 그런 좋은 목소리들이 떠오르면 괴로워서 갖다 버리려 했다. 이미 망가진 관계인데 그런 기억들이 다 무슨 소용이람. 이미 맘속에서 다 정리한 관계인데 좋은 기억이 자꾸 떠오르니 마음이 더 괴로웠다. 그래도 자꾸 피어오르는 좋은 기억들을 다 갖다 버릴 순 없어서, 혼자 아련해졌다가 나중에는 그냥 생각이 나면 생각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가 스노우볼의 깨진 유리 조각을 줍듯, 하나하나씩 떠오르는 좋은 기억들, 그리고 아팠던 조각들까지도 모두 모아다가 유리컵에 담아 한구석에 밀쳐두었다. 빛이 투영되어 색색으로 빛나는 것들을 애써 무시했다. 어느덧 한줌의 유리 조각들이 가득 모였을 때 한참을 바라보니 이것도 이 나름대로 아름답구나. 혹시 이런것도 사랑이고 우정일까. 다 깨진 유리 조각들도 모아놓고 이걸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부서진 유리 조각들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 시간들까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니까.

묵은, 이제 스스로 스노우볼을 깨고 밖으로 나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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