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읽은 책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by 수별이 2025. 3. 30.

 

 표지에 있는 저 여인이 로테인가보다.

로테는 실제로 괴테가 변호사 실습생 시절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실제 괴테는 베르테르처럼 비극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지만, 괴테의 친구 예루잘렘은 유부녀에게 실연하여 자살을 하였다고 한다. 두 이야기를 섞어 탄생시킨 소설이 1774년에 출판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상쾌함이 내 영혼을 송두리째 차지하고 있다. 마치 가슴 가득히 맛보고 있는 감미로운 봄날의 아침과도 같이.

이렇게 감수성 풍부하고 맑고 순수했던 베르테르가 어쩌다 그 지경까지 다다랐는지 안타깝기만하다.

어떤 말로도 나는 그녀가 얼마나 완전한가를 자네한테 말할 수 없다. 결국 그녀는 나의 모든 감각을 송두리째 사로잡고 말았다. 그토록 지혜로우면서도 소박하고 그토록 꼿꼿하면서도 상냥하며, 착하고 활발하고 영혼의 평화를 잃지 않는 아주 착한 마음씨.

비극의 시작은 설렘이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이런걸까. 베르테르의 모든 감각을 사로잡은 로테에게는 애석하게도 약혼자가 있었다.

그녀가 장갑과 부채를 가지러 방에 들어갔을 때에야 가까스로 나는 뜻하지 않은 놀라움으로부터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같은 상태에 빠지는데 이 상황을 이렇게 단아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워서 옮겨적어봤다. 

그때부터 해도 달도 별도 아무 일없이 그 운행을 계속하고 있는데도 나는 밤인지 낮인지조차 모른다. 나를 둘러싼 온 세계는 소멸했다.

사랑에 빠진 젊은이의 마음을 너무나 잘 대변한 표현이다.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내 모든 신경은 너에게로 향하는 시간. 인생에서 다들 한번쯤은 이런 감정을 겪어보지 않나. 표현이 참 시적이다. 

보노나의 돌이라는 것이 있다. 햇빛 아래 두면 광선을 흡수하여 밤에도 얼마 동안은 빛난다고 한다. 하인도 내게는 그러한 것이었다. 로테의 눈길이 그의 얼굴에 그의 볼에 그의 윗도리 단추에 외투깃에 쏠려 있었다고 생각되자, 이들 모두가 매우 신성하고 존귀하게 생각되었다. 그때는 1천 타렐을 준다해도 이 젊은이를 남에게 내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 앞에 있으면 나는 매우 행복했다. 제발 웃지말게 빌헬름이여, 행복이라는 것은 환영일까.

매일 어떤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로테에게 가서 얼굴을 보던 베르테르가 일이 있어 그러지 못했던 날은 하인을 시켜 로테에게 다녀오게했다. 제발 웃지말라고 한걸보면 본인도 이 상황이 어이없단 걸 알고있다는건데. 이렇게라도 행복하면 좋은걸까? 베르테르가 행복의 장점으로 치달을수록 나는 불안해진다.

로테의 약혼자 알베르트와 자살에 대해 논쟁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베르테르는 자살을 마치 치료 불가능한 병에 걸려 죽을 수밖에 없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로 인식했는데 알베르트는 굉장히 이성적으로 그것은 어리석은 선택일 뿐이라 응수한다.

누가 맞고 틀리다 재단하긴 어려운 주제이지만 베르테르의 말도 일리가 있다. 인간의 본성에는 한계가 있어 기쁨도 고민도 괴로움도 어느 정도까지는 참아내지만 그 정도를 넘어서면 파멸한다는 것. 그러므로 자살하는 사람을 비겁하다고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것은 악성 열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비겁자 취급을 하는 것이 부당한 것과 같다. 이런 신념이 있어 그는 끝내 그런 선택을 한걸까.

이 세상에서 인간을 가장 필요한 존재가 되게 하는 것, 그것은 사랑이다.

이 문장을 여기에서 보게 될 줄이야.
내가 생각해왔던 것을 250년 전에 괴테가 먼저 글로 썼구나. 인간은 사랑할 존재가 있어야 결국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다. <아저씨>의 차태식이 그랬고 <헤어질 결심>의 송서래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대의 우울증이 부럽다. 모든 감각기관이 흐트러져 점차 쇠약해가는 그대의 상태가 부럽다. 

로테에게 반해 고백을 했던 그 집의 하인(?)이 결국 쫓겨난 후 미쳐버렸다. 베르테르는 그를 부러워한다. 로테는 인간 자석산인가. 왜 남성들은 그녀에게 끌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지.

결심했습니다. 로테, 나는 죽습니다.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던 베르테르가 결국 결심을 했다.
너무 비극적이다. 요즘같으면 이혼이라는 방법도 있지만 1770년대 여성의 지위를 생각해보면 그럴수는 없었겠지.

베르테르는 주변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알베르트에게 권총을 빌린다. 하, 이 순간까지도 베르테르는 로테의 손길이 닿은 권총을 어루만지며 키스를 한다.

이 권총은 당신의 손을 거쳐서 왔습니다. 당신이 먼지를 닦아주었습니다. 나는 천 번 만 번 키스합니다. 당신의 손이 닿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정도면 사랑이 아니라 광적으로 집착하는 수준인데 실제로 누가 나에게 이런 감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좀 무섭기도하다.  베르테르야 왜 그러는거야 ㅠㅠ

당신한테는 나쁜 짓을 했습니다. 아무쪼록 용서해주십시오. 당신 가정의 평화를 무너뜨리고 두 분 사이에 불신을 심어놓았습니다. 안녕히! 그러나 그것도 마지막입니다. 나의 죽음으로 인해 당신이 행복해지기를 빕니다! 알베르트! 알베르트! 그 천사를 행복하게 해드리시오! 그리고 당신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내리길!

절절한 편지를 남기고, 로테의 손길이 닿았던 그 권총으로 베르테르는 끝내 자살한다. 

책을 읽으면서는 베르테르가 가엾고 안타까운 마음이 컸는데 글을 쓰다보니 좀 화가난다. 저런식으로 편지를 남기고 죽어버리면 로테는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하지?

책 초반에 알베르트와 자살에 관해 논할 때는 베르테르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로테라고 생각하니 이 자 때문에 내 일상도 무너졌을 것 같다. 뒷 이야기는 없지만 아마 로테는 평생을 이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며 보냈을듯. 

아니 그렇게 사랑하면 로테 손 잡고 같이 도망이라도 치든가 (물론 로테는 단칼에 거절했겠지만 ㅠㅠ), 오매불망 로테만 마음속으로 그리다 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살을하다니.

베르테르씨, 당신은 그 누구보다 감수성이 뛰어나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남자입니다. 부디 다음 생이 있다면 자신도 돌볼줄 아는 여유를 가졌으면 합니다. 로테를 만난 후 당신의 일상은 온통 로테였습니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오직 로테뿐. 이런 관계는 서로에게 이롭지 않습니다. 고생했습니다. 평안하세요.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