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란 노예 스파르타쿠스와의 전쟁을 이끄는 시저.
스파르타쿠스와 크라수스가 붙은 마지막 전투에서 어마어마한 살육이 벌어졌고 포로들은 십자가형으로 전시해서 크라수스는 자신의 업적을 과시했다. 시저는 저들을 살려두면 쓸 데가 많을 것이라 어필했지만.... 크라수스는 가차없이 십자가에 매달았다. 집정관으로 선출되고 싶은 야망으로.
기원전 70년, 로마는 아직 제국이 아니라 공화국이었다.
집정관은 공화국의 최고 권력자.
시저는 크라수스를 지지하며 자신도 그 길을 걷길 꿈군다.
집정관을 원한건 크라수스가 뿐만이 아니었다.
폼페이우스도 그 자리를 간절히 원했다.
그는 스파르타쿠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크라수스보다 한발 먼저 로마로 달려가 축하 파티를 열고 모든 공을 가로챈다. 어이없네;;
뒤늦게 도착한 크라수스와 시저는 벙찐다 ㅠㅜ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병사들에게 땅을 하사하고 싶었지만 원로원은 반대한다. ㅋㅋ
시저 아내 코르넬리아는 병으로 끝내 사망하고,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 사이에서 줄타기 고민하던 시저는
둘을 모아놓고 이야기한다. 나를 집정관으로 뽑아주면
둘 모두를 위해 원로원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 그리고 그 신뢰의 대가로 내 딸을 폼페이우스 당신에게 주겠다.
기원전 59년 1차 삼두정치의 막이 열렸다.
시간이 흘러 시저는 집정관에서 반강제로 내려와 지방의 총독으로 가고, 그는 로마에 위협적인 갈리아 지역을 정복하기로 마음먹는다. 로마에 재입성하기 위한 방책으로 그의 주특기를 활용한 것이다.
그사이 크라수스는 파르티아 전투에서 포로로 잡혀 끔찍하게 죽고 시저의 미래는 오직 갈리아 정복 성과에 달리게 됐다. (금을 녹여서 크라수스 입에 부었음 ㅎㄷㄷ;;)
기원전 52년.
갈리아 알레시아. 마지막으로 이곳을 정복해야 로마로 돌아가 승리를 알릴 수 있다.
시저는 알레시아를 동그랗게 감싸는 벽을 세워 갈리아군을 고립시켜 6만 명을 가둬놨다.

그리고 2차로 벽을 또 세워 갈리아의 여러 부족에서 온 12만 명의 병사를 가둔다. 결국 시저의 승리. 이 곳은 후에 파리, 제네바 같은 도시가 된다.
로마에서는 시저의 선전을 축하하고자 성대한 축제를 열고 시저는 로마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질투하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폼페이우스..... 이 자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저를 제거해야했다.
영원히...
어떻게? 승인 없이 전쟁을 했다는 명목으로.
원로원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매도하며 재판에 세워야한다고 연설했다.
원로원은 만장일치로 그를 기소하기로 합의한다.
하, 승자를 질투하는 건 똑같구나.
멍청한 선조랑 다를 게 없네.
폼페이우스 편에 선 사람 중 마르쿠스 브루투스 라는 자가 있다. 세르빌리아의 아들. 세르빌리아는 시저의 정부...
브루투스는 시저를 개인적으로 존경하기는 했지만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했다 승자의 편에서라고.
시저와 그의 군대는 갈리아와 이탈리아의 국경인 폭이 좁은 루비콘강까지 진군한다. 이 경계선을 넘어가면 법적인 관점에서 로마에 침입하는 것.
선택해야 한다.
기소되어 평생 추방당해 살 것인가, 반란군이 되어 로마로 진격할 것인가.
기원전 49년 1월 .
시저와 그의 정예부대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
이 소식을 들은 원로원은 일단 로마를 버리고 후퇴한다. 그리스 전역에 흩어져있는 군대를 모아서 싸우기 위해.
시저는 혼란에 빠져 무법천지인 로마에 가는 것보다 폼페이우스가 군대를 모으기 전에 붙잡는 게 급선무라 여기고 경로를 브룬디시움으로 틀어 그를 뒤쫒는다.
브룬디시움까지 왔는데 폼페이우스는 이미 배 타고 떠난 상태. 시저는 배를 만든다. 2달동안. ㅎㄷㄷ
일단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병력의 절반만 배를 타고 이동.
기원전 48년. 그리스 파르살루스.
도착하고보니 폼페이우스의 병력은 시저보다 4배나 많았고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러나 폼페이우스는 시저가 두려웠다.
그의 업적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은 전장에서 싸워본지가 너무 오래됐기에. 그래서 설득을해서 전투를 막으려한다.
예상했지만 협상은 결렬되고 그 사이 안토니우스가 시저의 나머지 병력을 데리고 무사히 그리스에 도착한다.
그래도 폼페이우스의 병력이 2배나 더 많아 전략을 잘 짜야한다.
시저&안토니우스 vs. 폼페이우스&브루투스
전투 1시간만에 폼페이우스는 도망ㅋㅋㅋ
병력은 훨씬 많았지만 시저의 전략은 당해내지 못한것.
그러나 폼페이우스를 포획하지 않았기에 끝이 아니다.
폼페이우스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도망가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전력을 가다듬고 시저는 추격한다.
몇 년 전 이집트에 거액을 빌려준 적이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빚을 담보로 병력을 요구할 심산.
당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 세계에서 최강 도시였다. 이에 비하면 로마는 신생아 수준 ...
프톨레마이오스는 14살의 왕으로 이집트에서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앉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폼페이우스의 머리를 잘라 한발 늦게 도착한 시저에게 보여준다. 시저는 몹시 충격 받고 분노한다. 그래도 한때는 내 딸의 남편이었던 자인데 이렇게 천박한 죽음을 맞이하다니....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렇게 말한다. 너의 전쟁은 이제 끝났으니 나의 전쟁을 도와라. 시저가 거절하자 납치 감금함...
시저가 알렉산드리아에서 가택연금에 처해있는동안 행정기구와 지도자가 없는 로마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에 빠졌다. 시저가 믿고 로마로 보냈던 안토니우스는 정치적 야망은 없던 인물이라 주색에 빠져 흥청망청 시간만 보낼뿐 로마의 안정이나 시민들의 안위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 때 클레오파트라 등장!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에 대항해 권력을 쥐고 싶었던 그녀는 시저와 연합해 결국 왕좌를 차지한다.
기원전 46년 드디어 로마로 돌아온 시저.

원로원 의원들을 모아놓고 스스로 10년짜리 독재관이 된다.
로마를 바로잡기 위함이라는 명목으로.
공화정 정치체제에 독재 정권이라니... 상당히 치욕적이었지만 의원들은 아무도 반대하지 못하고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시민들을 먹이고 검투사 대회도 열면서 정책도 수정한다.
그러다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고... 뇌전증인것 같은데 딱히 손 쓸 방도는 없다.
무서운 건 세르빌리아의 반응. 아들 브루투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시저는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는 로마 시민을 위해 공공사업을 시작한다. 신전, 도서관, 항만 등을 지어 로마인 수천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것. 무려 2천년 전에 수정 자본주의 개념을 도입하다니 ㅎㄷㄷ;; 루즈벨트가 무덤에서 박수를 칠듯....
또한 새 달력도 만드는데 이게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달력이다.
시저가 로마에 온지 1년도 안되어 클레오파트라가 로마에 찾아왔다. 아기와 함께.......이름은 카이사리온....충격.
(이 아이는 시저 사후, 17살에 살해당한다 ㅜㅜ)
시저는 로마를 공화정이 아닌 왕정으로 만들고싶어했다. 어느샌가 옷도 보라색으로 입음.. 그리고 스스로를 영구적 독재관으로 임명. 그러나 발작하는 모습을 원로원 의원들이 보게되고 시저는 이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파르티아 정복을 하러 떠날 계획을 세운다 . 크라수스에게 녹인 금을 먹여 죽였던 그 나라.
책상에 앉아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전장에서 상대를 정복하며 맛보는 쾌감이 훨씬 강했던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정복을 하면 부와 권력은 자연히 따라오니까 일석이조 였겠지.
브루투스는 만약 시저가 전쟁에서 이기기라도하면 더 강력한 권력을 얻어 왕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결국 원로원 안에서는 시저를 제거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파르티아 원정 사흘 전 비상회의는 소집되었고....
원로원 의원들은 시저를 둘러싸고 ...
칼로 찌른다..23번이나...
브루투스 너마저......
이 말이 너무 슬프고 아프다.
시저는 브루투스를 믿었을텐데.

아.... 이렇게 죽다니.....
얘는 은혜를 원수를 갚는구나. 폼페이우스 편에 섰을 때도 시저는 그를 살려주었고 오히려 특권까지 주며 아꼈는데.
도시는 애도했고 최고 결정권자를 정하는 과정에서 정치는 혼란에 빠진다.
브루투스와 공모자들은 질서를 찾으려했지만
상황은 제어 불능 상태가 된다.
수개월이 지나 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는 적이 되어
전장에서 권력 다툼을 벌이고 브루투스는 패하여 포로가 되어 자살한다.
도대체 이게 뭐냐고!!
안토니우스의 동맹은 그도 죽이려고 하여 안토니우스는
이집트로 도망가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한다.
원로원은 시저를 죽이는 것만이 로마 공화정을 지키는 방법이라 믿고 시행했지만 결국 평화를 되찾은 방법은 한 사람의 통솔력 뿐이었다.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 시저의 조카다.
기원전 27년 1월 16일.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첫 황제가 되고 40년간 통치한다.
시저 사후 20년 후 로마는 제국이 된다.
아니, 진짜 어이 없는 게 결국 브루투스는 아까운 시저만 죽이고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는 거다. 결국 로마는 공화정에서 제정이 되었고.
공화정을 살리겠다는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방패삼아 권력욕을 표출한 안타까운 일이라 본다.
이 멍청이 브루투스. 너만 아니었으면 로마 역사는 더 풍부하고 재미있었을텐데.
군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훌륭했고
무엇보다 로마 시민을 아꼈던 줄리어스 시저.
당신의 업적은 후세에 길이 남아
이렇게 넷플릭스에서 다큐드라마로 만들어졌답니다.
당신의 삶은 수많은 문학 작품에 영향을 주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여운을 남겼어요.
고생 하셨어요. 편히 쉬세요. 안녕 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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