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읽은 책

김훈 - 흑산, 종교의 자유가 없는 세상

by 수별이 2011. 11. 7.






몇 해 전 남한산성을 흥미롭게 읽은 터라 이번에도 주저없이 흑산을 선택했는데요,
첫 페이지를 다 읽기도 전에 '아 이 책은 누가 뭐래도 김훈 작품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김훈스러운 문체와 단어들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한자로 된 생소한 단어들이 많아서 읽는 데에 약간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치밀한 줄거리와 복선들은 독자가 책을 읽는 내내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가진 사연 하나하나를 어쩜 그리도 깨알같이 설정을 해놨는지
읽는 내내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ㅎㅎ

흑산은 18,19세기 조선에 천주교가 들어오고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정부의 탄압, 이에 굴하지 않고 꿋꿋히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가는 지식인들과 서민들의
눈물겨운 투쟁을 배경으로 한 책인데요,

한국사 공부할 때도 천주교 박해는 그다지 비중이 크지도 않았고
박해사건들 앞글자만 따서 외우기 바빴는데 이렇게 소설로 읽고나니
지금 우리에게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801년, 장판杖板 위의 지옥에서 헤어진 형제들
1800년 정조의 죽음은 노론 벽파의 득세를 가져왔다.
그들은 나이 어린 순조의 섭정을 맡은 대왕대비 김씨를 부추겨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정약용, 이가환 등의 남인 세력을 몰아내고자 했다.
그리고 이벽, 이가환, 정약용 등이 천주학을 받아들여 국본을 뒤흔들었다며 천주학에 물든 ‘사학죄인’으로 몰았다. 의금부 국청 마당은 정약전, 약종, 약용 형제의 운명을 가르는 지옥이 되었다.
의금부 장대에 묶인 정약용은 천주교를 서슴없이 배반했다. 그는 조카사위 황사영을 밀고했고 천주교도 색출을 위한 방도까지 일러주었다. 정약종은 순교의 길을 끝까지 걸어갔다. 약종의 죽음은 나머지 형제들의 죽음을 면해주었다.


정약전, 왜 삶은 배반으로써만 가능한가?
소설은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를 떠나는 뱃길에서 시작한다.
약전은 막막한 흑산 바다 앞에서 “여기서 살자, 고등어와 더불어…… 섬에서 살자”(200쪽)고 되뇌며 창대 소년과 함께 물고기를 들여다보고 순매와 살림을 차린다.
함께 천주 교리를 공부하며 세상 너머를 엿보았지만 정약전은 두 동생처럼 단호하게 제 갈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다만 세상 너머로 간 약종과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 약용, 그리고 조카사위 황사영을 생각하며 기진맥진할 뿐이었다.
그가 들여다본 물고기들의 이름과 행태는 '자산어보'라는 책이 될 것이다.


황사영, 세상 너머를 꿈꾸며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다
정약전이 흑산 바다의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여기의 새 삶을 기약할 때,
약전의 조카사위 황사영은 바다 너머 새 세상의 소식을 꿈꾸고 있었다.
 ‘사학의 거흉’으로 지목된 후 체포망이 좁혀오자 황사영은 제천 배론 마을의 토굴로 피신한다.
황사영은 16세에 장원급제하여 정조가 친히 등용을 약조할 만큼 앞길이 창창한 인물이었다.
정조가 잡은 손목에 붉은 비단을 감았던 황사영은 하얀 비단을 풀어 박해의 전말과 박해자들을 물리칠 큰 배에 대해 써내려간다.
배교한 유의儒醫 이한직의 소개로 황사영의 밀사가 된 마부 마노리가 북경 교회의 구베아 주교에게 이 편지를 전해주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구베아 주교에게 영세를 받고 황사영을 만나러 오던 마노리가 의주에서 체포됨으로써 황사영 또한 발각되고 만다.
소설은 절해고도 흑산에서 정약전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아이들을 가르칠 서당을 세우고 새로 부임하는 수군 별장을 맞는 장면으로 끝난다.


                                                                                         -인터파크 책 소개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황사영이 붙잡히지 않길 간절히 바랐지만
결국 그는 제천의 배론에서 발각되어 이 세상의 너머로 가고
가족들은 귀양을 갔다고 합니다...ㅠ



황사영은 두 자짜리 명주 폭에 글자 일만 삼천삼백여 개를 써 넣었다.
글자들은 울부짖고 애걸했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쓰기를 마치던 날 새벽에 육손이가 개구멍으로 더운 된장국과 쑥떡을 넣어주었다.
황사영은 요강을 내밀었다. 요강은 가벼웠다.
- 마노리는 소식이 있느냐?
- 귀환 사행이 이미 서울에 닿았다 하니 곧 소식이 있을 겁니다.
                                                                                                                  
                                                                                                     -흑산 중에서

                            
                              ↓ 이것이 바로 황사영이 토굴 안에서 쓴 백서입니다.


현재는 로마교황청 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고 하네요.

김훈 작가 혹은 역사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은 읽어도 후회 없으실 것 같아요.



대한민국 헌법 제20조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우리헌법에 이 한줄이 쓰여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조상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살다보면 자신의 신념을 믿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느낄 때가 많은데요,
모진 고문과 핍박에 죽음으로 맞서며 신념을 지킨 그 분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책입니다.

단순 소설이 아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기 때문에 더욱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웃님들,  한번 보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거에요^^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