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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대한적십자 혈액관리본부

 

 

Posted by 수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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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유로화, 왜 만들었나

 

유로화는 1999년 가상화폐로 처음 등장, 2002년 정식 유통.

영국,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이외의 유럽 국가에서 유로화 사용.

 

브레튼우즈 협정(1944.7) :  금 1온스 = 35달러. 앞으로 세계 기축통화는 달러화. 다른 나라의 통화는 달러화에 연동시키자. 그러나 1960년 베트남 전쟁 때문에 금태환제가 폐지되고 유럽은 1999년 유로화 통합.

 

 

 

 영국은 왜 EU에 가입하지 않았나

 

1990.10 동독과 서독 통일. 통일비용을 위해 서독은 돈을 마구 뿌렸고 당연히 물가가 올랐음. 물가를 잡기 위해 독일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8.75%로 올림. 물가는 잡혔지만 독일의 화폐가치는 상승. 세계의 자금은 독일로 몰리고 화폐가치는 절상 = 유럽 각국의 화폐 가치 폭락.

 

그런데 1990년대 초반, 유럽의 주요국가들은 ERM이라는 유럽환율조절메커니즘 체제 안에 들어있었음. 유럽의 각국은 준고정환율제를 택해 서로 6% 이상의 환율 변동은허락하지 않겠다는 것. 영국  파운드화는 독일 마르크화에 비해 6% 이하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데, 실제로 독일 마르크화는 그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 되어야 정상이고, 영국 파운드화는 훨씬 싼 가격이 되어야 정상.

 

이미 독일 연방은행의 금리인상 때문에 유럽 각국에서는 고통을 겪고 있었음. 그래서 수많은 나라들이 독일을 따라 금리를 높여서 화폐가치 방어하고자 함.

 

독일은 초고금리로 마르크화의 가치가 매우 높아질 상황. 그런데 당시 존 메이저 영국 총리는 "파운드화 평가절하는 영국 경제의 장래에 대한 배신행위" 라며 영국 파운드화의 가치를 지켜내겠다고 선언. 그래서 영국 중앙은행은 시중에서 마르크화를 팔고 파운드화를 사서 파운드화의 가치를 지키고자 함.

 

이 틈을 타 조지 소로스가 " 영국 파운드화는 당연히 지금보다 가치가 낮아야 하는데, 영국 정부 때문에 억지로 높은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곧 파운드화는 폭락하니 팔아 치워라" 고 함. 소로스의 뒤를 따라 다른 수많은 헷지펀드 투자자들이 파운드화 공격.

결국 한 달만에 영국 정부는 ERM에서 탈퇴. 즉 파운드화의 가치절하를 수긍할 수밖에 없다는 항복. 1992년에 영국 파운드화는 마르크화에 비해 15% 가치절하.

 

이렇게 소로스에게 처참하게 당한 영국은 다시는 '고정환율제' 근처에도 가지 않게 되었고 EU 통합 노력에서 완전히 빠지게 됨.

 

 

유로화 통합 단점

 

① 환율조절 기능 상실

 

예를 들어 독일 마르크화와 그리스 드라크마화만 유로로 통합을 했다면?

독일은 경제 규모도 크고 물가도  안정적인 나라. 마르크화의 가치도 높음.

그리스는 경제 규모도 작고 인플레도 심하고 무역수지 적자도 큼. 드라크마화의 가치도 낮음. 편의상 마르크화의 가치를 100, 드라크마화의 가치를 50으로 가정하면

두 나라의 화폐를 통합한 유로의 가치는 75의 가치를 갖게 됨.

 

그리스 사람들은 돈 가치가 올랐으니 신남. 하지만 그리스 기업들은 똑같은 물건을 만들어도 가격 자체가 비싸지는 효과가 생겨서 외국에 수출하기가 엄청 힘들어 짐. 여기에 근로자들의 임금도 훨씬 비싸지는 효과도 생김. 경영하기 힘들어지니 다른나라로 공장을 옮기거나 망함. 실업률 증가.

 

독일 사람들은 돈 가치가 떨어져 생활하기가 빡빡해짐. 돈 가치가 떨어지니 수입품 사는 것은 더 힘들어져 국산제품 열심히 사용. 기업입장에서는 예전엔 100 마르크로 팔던 물건을 75유로로팔 수 있으니 가격 경쟁력이 생김. 임금도 똑같은 돈을 주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가치가 깎인 돈을 주게 되니 여기서도 이익이 커짐. 그래서 공장을 더 늘릴 것이고 일자리는 더욱 늘어남.

 

☞ 두 나라의 경제적 차이는 계속 벌어짐. 그리스는 점점 더 많이 수입해서 쓰게 되고 기업들은 망해 감. 독일은 점점 더 많이 수출하고 기업들은 성장. 

 

그리스 1994~1998년 GDP대비 평균 2.3% 적자.

통합 이후엔 8%까지 적자.

 

 

② 재정기능과 통화기능의 분리

통화정책은 유럽중앙은행이 맡고 있지만 재정정책은 각 국이 알아서해야 함.

조화롭게 정책을 펼 수가 없음.

 

③ 위기의 전염 효과가 너무 높아짐

 

 

 유로화의 미래

 

① 그리스 쫓아내기 : 그리스를 빼버리면 그리스는 빚 때문에 파산. 그리고 다른 나라들도 그리스의 뒤를 따라 퇴출될 확률이 높음.

 

② 독일 쫓아내기 : 우등생인 독일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음.

 

③ 해산

 

 

 

 

Posted by 수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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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미국은 어떻게 세계 유일강국이 되었나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으로 일어선 것은 1차대전(1914.7.28~1918.11.11) 이후. 이전까지 세계경제의 패권은 영국에 있었고, 국제적인 기축통화도 영국 파운드화. 하지만 전쟁으로 영국과 프랑스가 동반 몰락하고 이후 미국이 떠오름.

 

1900년 첫T형 포드가 미국에서 팔리기 시작하면서 1911년 대량생산체계 확립. 이후 950달러였던 차값이 300달러로 떨어졌고 포드는 엄청난 양의 자동차를 팖. 노동자들의 임금도 2배로 인상.

 

1916년부터 미국은 전국에 고속도로 건설 시작. 1930년대 자동차 보급률은 이미 30%를 넘어섰고 누구든 돈만 있으면 비행기 여행 가능. 도시마다 20층 이상 건물이 수백 채씩 건설. 주식시장은 무려 400%이상 성장. 이에 전 세계 자금이 미국으로.

 

1929.10.24. 목요일. 대공황 발생.

 

 

 

■ 대공황은 왜 터졌나

 

①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 :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점(공급 > 유효수요)

 

② 정부정책의 실패

1932년이나 되어야 재정지출이 늚. 그전까지 정부는 손 놓고 구경.

대공황으로 해외 자금(달러 = gold)이 빠져나가자 이를 막기 위해 금리도 올림.

 

③ 주식시장의 지나친 투기성향

당시 주식투기자금의 대출이 너무 많았음. 은행들은 주식투자자들에게 주식을 담보로 돈을 대출해주는 장사. 주식 가격이 계속 올랐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었음.

 

④ 증권사와 은행의 도미노 현상

은행이 고객의 돈으로 주식에 투자.

주식투자 실패 - 뱅크런 - 은행파산 - 기업파산

1933년에는 전체 은행의 30%가 파산.

 

 

 

■ 미국 대공황은 왜 세계적 공황으로 커졌나

 

스무트-홀리 법안. 보호무역하면서 수출만 잔뜩 하면 공장도 다시 돌아가고 경제가 다시살아날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 미국 수입품 관세가 평균 59%, 최고 400% 인상.

 

이에 영국와 캐나다도 즉각 관세율 올림. 결국 수출로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기존에 하던 수출마저 박살. 1929년에 52억달러였던 수출은 1932년에 16억 달러로 곤두박질. 세계무역액도 3년 만에 61%가 줆.

 

 

 

■ 대공황 극복 노력

 

1932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취임. 긴급은행법 제정하여 모든 은행들의 영업 일시정지.

재건금융공사(RFC)를 통해 공적자금  투입과 청산 합병 등 구조조정 단행.

상업은행과 증권사 분리시키는 글래스-스티걸 법안 통과.

그러나 시티은행 그룹의 끈질긴 로비로 1999년 상업은행의 증권사 겸업 허용.

 

뉴딜정책으로 실업자 구제.(테네시강 유역 개발 사업)

경작면적 줄이고 휴한지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여 농산물 가격 상승 유도.

적자재정 시행. 연방정부 강화. 고소득자 소득세 최고 94%.

 

 

 

■ 미국의 힘 어떻게 약해졌나

 

1차 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 2대 대전 이후 세계 유일 초강대국.

하지만1965년 베트남전쟁 발생. 전비는 GDP의 12%까지 올라감.

당시 미국은 금태환제. 전쟁으로 미국이 달러를 뿌려대자 프랑스는 달러 채권을 금으로 바꿈. 영국와 독일까지 가세해서 금을 빼감.

 

1971.8.15 닉슨 대통령은 " 미국은 '일시적으로'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

곧 금값 폭등. 1온스 당 35달러이던 것이 600달까지 치솟음.

이에 유가도 폭등.

금 1온스 = 35달러 = 원유 10배럴 이었던 것이

금 1온스 = 600달러로 뛰었으니 금 1온스를 갖기 위해선 원유 200배럴을 팔아야 한다는 어이없는 일 발생하므로 원유 값이 오를 수밖에 없음.

 

원유 값이 오르면 물가도 오름.

우리나라 1973년 3.5% 이던 물가상승률은 1974년 24%까지.

1979년 2차 오일쇼크 때는 28%까지.

 

☞ 수요도 없는데 비용이 올라 물가가 30%씩 올라버리는 스태그플레이션.

여기에 대공황 때처럼 적자재정을 펼치면 물가가 더 뛰므로 시행 못함.

하여 신자유주의 등장. 금리 인상. 1981년 연방준비은행장이던 볼커는 기준금리를 20%까지 인상. 이후 물가는 안정됨.

 

 

■ 2008년 금융위기

 

미국 경기는 9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인 호황기, 90년대 후반 이후로는 평균 성장률 4.2%로 절정. IT 혁명 덕분.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망 보급되기 시작. 주식시장은 닷컴버블로 활황. 2000년이 되자 기업의 IT 투자가 시들해졌고 시장경쟁은 더 치열해짐.

 

그린스펀은 경제에 큰 문제가 생길 때마다 큰 폭의 금리인하로 돈줄을 팍팍 풀어줌. 그러나 시장이 어느 정도 정상을 되찾아도 저금리 유지.

 

미국 경제는 2004년 정상을 회복했지만 기준금리는 여전히 1%대. 당시 물가상승률은 2%. 저축보단 물건을 사두는 것이 유리. 이에 미국인들은 일본산 자동차를 사고 한국산 전자제품을 사고 중국산 온갖 장난감을 삼. 결정적으로 미국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금융회사들은 엄청난 고금리로 돈놀이 시작.

 

 

리먼 브라더스(1850년에 세워진 미국 4위의 투자은행). 채권을 주로 팔던 회사가 부동산에 손을 대면서 전 세계에 리먼 브라더스 소유의 건물을 무려 20만동 소유하게 됨.

파생상품 채권을 가득 쟁여놓았던 리먼 브라더스는 결국 파산. 이 채권에 보증을 선 보험사도 파산. 여기에 엮여있던 수많은 은행과 증권사도 파산.

 

 

 

Posted by 수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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