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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지킬 박사와 하이드

by 수별이 2025. 4. 14.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어딘지 모르게 기분 나쁘고, 어딘지 모르게 혐오스러운 얼굴이지요.
저는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어딘가 추하고 볼품없다는 느낌을 주는 모습이었지만
딱히 한 군데를 꼽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주 이상한 모습이었지만 어디가 이상한지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이드의 외양을 묘사한 부분이다. 
선이 단 1g도 섞이지 않은, 순수 악으로만 가득찬 인간의 내면이 형상화되면 이런 느낌이라니. 섬뜩하다.

처음엔 하이드를 이렇게 표현한 이유를 몰라 조금 어리둥절했다. 보통 괴물의 모습을 상상할 때 크고 우락부락한 모습을 떠올리지 않나? 마치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었던 그 괴물처럼.

그러나 하이드의 모습은 마치 골룸 같은 이미지다.
작고 외소하며 비열한 느낌.

지킬박사 최후의 진술에 그 이유가 나온다.

여태까지 나는 미덕과 분별 있는 삶을 추구하는 데 90% 정도의 노력을 할애했기 때문에 악한 부분은 활동이 훨씬 덜했고 소모된 부분도 적었다. 그런 이유에서 에드워드 하이드의 모습은 헨리 지킬보다 훨씬 작고 호리호리하고 젊은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한쪽의 외양에서는 선이 빛을 발하고 다른 쪽의 얼굴에서는 악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다.



굉장히 논리적이지 않나?
이 문단을 읽고 박수를 쳤다. 
역시 작가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음울한 어둠을 쫓아내지도 못하고, 환히 불태워버릴 기력도 없는 가로등 불빛이 비추고 있는 소호의 음산한 거리.
안개는 여전히 잠든 도시 위에 날개를 펴고 있었고
가로등은 붉은 보석처럼 빛났다.

을씨년스러운 거리 풍경을 이토록 찰떡같이 묘사한 문장은 처음본다.
하이드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거리다. 
안개와 날개 리듬감도 좋아서 옮겨적어봤다.


약을 먹고 모든 삶의 굴레에서 벗어난 하이드로 변신을 했던 지킬 박사는 이제는 약을 먹어야만 지킬로 돌아올 수 있다.
선택으로 하이드와 지킬을 선택할 수 있었던 그 순간은 찰나였다.
의도하지 않아도 하이드의 모습이 자꾸 나타났고, 그 주기는 점점 단축됐다.

그런데 그 약은 바닥을 드러내고있고, 더이상 제조할 수는 없다. 지킬보다 하이드의 모습으로 보내야 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지킬로 사는 운명을 선택하면, 오랫동안 비밀스럽게 탐닉해왔지만 최근에는 맘껏 채울 수 있었던 욕구에 사형을 선고해야 했다. 하이드로서의 삶을 선택하려면, 지킬의 모든 명예와 지위를 포기하고 일거에 모든 사람들에게 경멸당하고 영원히 친구도 하나 없는 처지가 되어야했다.


인간에게 이중적인 모습은 어느 정도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닐테니 남이 보는 나와 내가 아는 나가 다른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니지 않을까.

다만 작가는 시기, 질투, 배신 같은 감정을 좀 더 극적으로 확대해서 표현했을 뿐 근원은 우리 내면에 있는 그 작고 어두운 씨앗과 같은 것이다. 이 씨앗이 하이드로 발현되지 않도록 절제하고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인간이 사회화되는 과정이다. 적절한 시기에 이걸 학습하지 못하면  뉴스 사회면에 나오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고. 

바로 지금이 내가 진정으로 죽는 순간이다.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일일뿐이다. 펜을 내려놓고 내 고백을 봉인하는 바로 이 순간 나는 불행한 헨리 지킬의 삶에 종지부를 찍는다.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인간의 심리와 내적 갈등 과정을 잘 보여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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